“30대에 치매가 온 줄 알았는데, 보일러가 서서히 나를 죽이고 있었어요.”
영국 체셔주에 사는 수 웨스트우드-러틀리지(52세 여성)는 20년 전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독감과 비슷한 증상과 두통, 어지럼증으로 고생했고 특히 집중력이 현저하게떨어졌다. 이사 당시 6세였던 아들 조쉬는 계속 복통을 호소했다.
웨스트우드-러틀리지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갔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는 말만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지던 그는 어느 날 현관문 앞에서 쓰러졌다. 당시 간신히 응급구조 전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의식을 되찾았는데 심장마비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집에서 반복적으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고, 심장이멈춰 생명이 위독해지는 일을 겪었다. 의료진은 이상 증상에 당황했고, 마약을 복용한 적이 없음에도 코카인 남용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전문의들은 당시 30대 중반이던 웨스트우드-러틀리지를 ‘조기 발병 치매’로 진단하기도 했다.
웨스트우드-러틀리지는 ITV와의 인터뷰에서 “조쉬는 학교에 있었어요. 남편 폴은 직장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집에 혼자 있었어요. 심한 가슴 통증이 있었고 숨을 쉴 수 없었어요. 겨우 구급차를 불렀는데 검사 결과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심장 병동에서 심전도, 엑스레이, 혈액 검사 등 여러 검사를 받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증상이 코카인 중독 증상과 무서울 정도로 비슷해서 여러 의사가 이를 물어봤어요. 코카인을 복용했다는 의심을 받는다는 사실에 겁이 났어요. 저는 어떤 종류의 마약도 복용한 적이 없습니다. 의사들은 제가 초기 치매에 걸린 것 같다고 진단했어요”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일러 보증 기간이 끝나고 브리티시가스의 엔지니어가 유지보수 점검을 위해 방문한 후 문제의 진짜 원인이 밝혀졌다. 조사 결과, 보일러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일산화탄소가 그대로 누출되어 중독된 것으로 밝혀졌다. 새집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웨스트우드-러틀리지는 끊임없는 두통, 현기증, 집중력 부족 등을3년 동안이나 시달렸지만, 위험이 자기 집 보일러 문제였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이처럼 일산화탄소 중독을감기나 독감 증상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12월 27일 캐나다의 유명 모델이자 배우인 데일 해든(Dayle Haddon 76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딸의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웨스트우드-러틀리지는 ITV 뉴스 인터뷰에서 “가스 점검원이 즉시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을 때 표정을 잊지 못한다”며 “우리 가족은 거의 죽을 뻔했는데 죽지 않은 이유는 창문을 항상 열어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산화탄소는 무색, 무취, 무미의 기체로 흡입하면 치명적이다.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로 부른다. 일산화탄소가 체내에 들어가면 혈액이 세포, 조직 및 기관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것을 막는다.
영국에서는 매년 약 30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고, 약 4,000명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진단 미비로 인한 일산화탄소 노출 숫자를 포함하면 중독 숫자는 최대 5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웨스트우드-러틀리지는 20년 전 3년간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후유증을 여전히 심각하게 겪고 있다. 검사 결과 그의 뇌는 ‘뇌졸중을 앓는 80대 노인’의 뇌와 비슷했다. 영국 가정 열 곳 중 한 곳이 ‘위험한 수준’의 일산화탄소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경고했다.
시련의 원인을 알게 된 후, 즉시 보일러를 수리하고 집에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설치했다. 그러나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쇠약해진 몸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결국 노출로 인한 뇌 손상으로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현재 웨스트우드-러틀리지는 혈관성 치매, 섬유근육통, 티에츠증후군, 말초신경병증, 몇 주마다 발생하는 편두통, 기억력, 집중력 저하 등 여러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
집에서 일산화탄소를 흡입했을 때있을 수 있는 주요 징후 7가지를 소개한다.
치매와 유사한 혼란 또는 실신
뇌세포에 산소가 점점 부족해지면서 사람들은 치매와 유사한 정신적 혼란, 집중력 저하, 의사 결정 장애, 방향 감각 상실 등의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인지 장애는 자신이 처한 위험을 인식하거나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
두통
일산화탄소로 뇌세포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혈류량을 늘리기 위해 혈관이 확장되어 가벼운 두통부터 심한 두통까지 다양한 긴장성 두통이 발생할 수 있다. 두통은 관자놀이나 이마에 압박감을 동반하며, 일반적인 두통과 달리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호전된다.
현기증
산소 부족은 뇌의 평형 중추와 공간 처리 능력에 영향을 미쳐 빙빙 도는 느낌, 어지러움 또는 불안정함을 유발한다. 이 증상은 방향 감각 상실로 인해 자신이 처한 위험을 인지하거나 해당 부위를 안전하게 대피하기 어렵게 하므로 특히 위험하다.
근력 약화
근육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독감이나 극심한 피로로 느껴지는 쇠약감이나 피로를 경험한다. 이러한 쇠약은 종종 팔다리가 무겁고 피곤하며, 계단 오르기 같은 일상적인 신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똑바로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데도 힘든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쇠약은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피곤함이나 과로로 치부하기 쉽다. 일상 활동 중에 더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하고, 최소한의 노력에도 비정상적으로 피곤함을 느낀다. 증상의 원인을 명확하게 찾기 어려울 때 일산화탄소 노출을 의심해 봐야 한다.
메스꺼움
산소(혹은 양질의 공기 흐름) 부족은 뇌의 메스꺼움 조절 중추를 자극해 구토를 동반한 메스꺼움과 복통을 동반한다. 이 증상은 종종 두통과 피로와 같은 다른 모호한 증상과 함께 나타나기에 자신의 불편함을 일반적인 질병으로 오인하게 만든다.
호흡 곤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면 혈액 내 헤모글로빈과 공격적으로 결합해 적혈구가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운반하지 못하게 하는 화합물인 카르복시헤모글로빈(Carboxyhaemoglobin)을 생성한다. 혈중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면 신체는 필사적으로 호흡 횟수와 깊이를 늘려 보상하려고 시도하여 무서운 호흡 곤란을 느끼게 된다. 이 호흡 곤란은 처음에는 신체 활동 중에만 눈에 띄지만, 일산화탄소 노출이 계속되면 휴식 중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집을 나서면 모든 문제가 나아진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증상이 집을 나설 때 덜 심하거나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일산화탄소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집에 있는 동안 숨쉬기가 힘들고 지속적으로 아프거나 어지러운 느낌이 들다가 외부나 다른 환경에 있을 때 이러한 증상이 나아진다면 일산화탄소 노출이 집 안에서 발생 중일 가능성이 높다.
